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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대의 도시재생 이야기
광명, 숫자를 벗어 버리자
2019. 04. 16 by 황종대 광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

광명, 숫자를 벗어 버리자

광명시 도시재생 이야기(2)

황종대 광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
황종대 광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

광명시는 인구 34만 명 내외의 중소도시며, 수도권의 가장 대표적인 베드타운이다. 교통의 요지이며, 서울 중심부로 출퇴근하기 좋은 조건으로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안양천을 따라 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광명동 저층 주거지, 80년대 지어진 철산 주공아파트, 90년대 개발된 하안동, 밀레니엄 전후로 개발이 시작된 소하동 아파트단지, 그리고 여전히 개발이 진행 중인 광명역 KTX 인근과 학온동. 그야말로 우리나라 주거 역사의 흐름이 안양천을 따라 전시되어 있다.

광명동 주변전경(2006)
광명동 주변전경(2006)

 

그렇다, 광명은 우리나라 현대 주거의 박물관이다.

광명은 숫자가 지배한다. 철산 11단지, 소하2지구, 광명뉴타운 16구역. 광명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정체성을 쉽게 거절당한다. 대신에 아파트단지로 계획된 도시답게 숫자로 구획된 도시가 되었다. 한국에서 지역성은 대부분 아파트 브랜드 또는 구역(단지)의 숫자로 인식되는데, 이것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재개발될 지역으로, 재건축을 목표로 입주하는 곳으로,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의 도시와 도시성은 부동산, 즉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광명을 대표하는 주거라면 단연 아파트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 국민이 편안한 아파트에 사는 것이 목표인 나라이다. 특히 아파트는 단지 거주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재산의 증식까지 책임져 주니, 대한민국 국민이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환호하는 것은 무리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광명뉴타운의 모든 구역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되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철산,하안동 전경(2006년)
철산,하안동 전경(2006년)

 

반면에 아파트 외 대부분 주거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살기 편리한 다세대 주택, 생활이 윤택한 다가구 주택은 상상이 어렵다. 도시 주택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저층 주거지역은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생활편의시설이 부족하고 환경을 정비해야 하는 곳이다. 이들의 결론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정비사업의 활성화,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이 지역을 아파트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뿐이다. 대규모로 한 번에 정비할 수 없으니, 도시재생을 통해 소규모로 정비해 보자는 것이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의 골자이다. 지역의 정체성이나 가능성은 외면한 채, 정비해야 하는 열악한 도시환경의 대상으로만 이야기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역 주민들이 거주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가치를 발견해 가고, 공동체의 생태계를 가꾸어 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도시, 세대를 통해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개발 등의 가치는 당장의 사업성과 편리성 앞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쉽게 여행을 통해서 경험하는 서구의 아름답고 관리되는 도시, 도시 중앙에 광장이 있고, 지역 주민들이 산책하는 공원, 돈이 없어도 지역 주민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논의는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재생은 주차장을 만들고 주택을 개선하며, 몇 가지 공동체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파트 위주 주거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에서 탈피하기 위해 선진국에 벤치마킹을 가기도 하고, 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어쩌면 도시재생도 그러한 흐름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저층 주거지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쉽사리 저층 주거지역의 지역성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모습을 쉽게 부정한다. 공동체 활성화를 이야기하지만, 개발의 논리 앞에 지역 공동체는 쉽게 무너져 버린다.

구름산에서 본 광명시 전경(소하동)
구름산에서 본 광명시 전경(소하동)

 

사회가 가진 재화는 무궁무진하게 생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정된 재화로 인해 부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한쪽이 많이 가지면 다른 한쪽이 내놓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도시정비사업은 주민과 행정의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키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다. 입주민의 분담금을 통해 도시의 기반시설이 만들어지고, 주거환경이 좋아지는 장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업성의 극대화로 인한 법에서 요구하는 최대한의 개발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최근에 지어지는 공동주택의 연한을 30년으로 본다고 할 때, 30년 후에는 그 이상의 사업성으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처리 비용을 다음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또한, 민간 사업자는 조성되는 건물 또는 시설의 지속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파트를 만들면서 100년 이상을 내다보지 않는다. 아니, 30년 후도 내다보지 않는다. 이로 인해 도시는 그 정체성을 가질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으며, 30년 후에 재개발(또는 재건축)이 된다 해도 그 폐기물 처리 비용 및 환경오염에 대한 비용을 다음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당장 우리 세대에서도, 급등하는 부동산가격에 세대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부를 소유하고 있는 기성세대는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계속되는 개발을 요구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안한 경제 사정과 고용상황에 놓여있는 젊은 세대는 소득 대부분을 부동산 임차 비용에 사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소유주가 부동산을 통해 얻어지는 불로소득은 사실 다음 세대의 주머니에서 충당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에 대한 가치는 부를 소유하고 있는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세대에 더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회적 처우와 계층이 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재개발에 대한 환상이나 부동산의 추구는 단지 남의 일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저렴하게 공급되는 사회임대주택이 더 소중하고, 젊은 엄마들이 모여서 함께 정보를 나누고 육아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카페가 있어야 하고, 지역의 복지시설이 주거 근처에 있기를 선호한다. 기성세대가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젊은 시절부터 주거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왔던 젊은 세대는 저렴하게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세대가 흘러가면서 도시와 주거에 대한 개념이 점점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도시의 기본적인 관리 방법부터 자본과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다. 도시 기반시설의 공급은 최소한의 투자를 통해 최대한의 효과를 보는, 다시 말하면 공공재원 투입을 최소화한다는 명목 하에 진행돼왔던 재개발과 주거환경정비사업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우리는 공공재원을 도시에 투입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에 기반시설이 열악한 저층 주거지역에 공공재원을 투입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자본에 의해 관리되는 도시는 공공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구는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라도 지역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간다. 도시의 질, 공공의 삶의 질은 철저하게 공공공간의 질에 달려 있으며, 그 소유는 공공이 되어야 한다. 질 높은 공공공간, 도시환경이 공공을 통해 제공되어야만 공동체적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민간을 통해 공급되는 주거에서 개별 주택의 질은 어느 정도 높아지고 있지만, 공공시설, 공동체성은 여전히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공급되고 관리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민간뿐만 아니라, 소위 공공기관에서 공급하는 공동주택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사업성만을 추구하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사업성과 공공성은 반비례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관리를 위해 공공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주민들의 일차적인 요구, 주차장의 건설과 도로의 확충은 결코 도시를 개선하지 못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사는 삶의 질은 함께 만족될 수 없다. 도시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고, 서로 다름의 불편함을 인정하고 용인해야 하는 공동체이다. 편리하게 지하주차장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 주민이 함께 만나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공동의 선을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도시는 다양한 만남과 부딪힘의 기회가 다양하게 중첩되어 나타나야 한다.

우리동네살리기 사업 예시(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17. 7. 28)
우리동네살리기 사업 예시(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17. 7. 28)

프랑스의 마을관리 기업인 레지드까르띠에(Régis de quartier)는 지역의 재개발을 막는 주민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주민 모임이 지금은 전국 모든 지역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마을관리 협동조합이 되었다. 이들은 지역을 관리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내고 발굴했으며, 이것을 통해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공공시설을 개선하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을 넘어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물리적 환경을 스스로 개선하고 만들어간다.

돈으로 사는 도시는 돈으로 망한다. 광명은 도시재생의 기회가 넘쳐나는 땅이다. 뉴타운이 해제된 지역에는 주민의 삶이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원도심에는 주민 공동체가 형성돼가고 있다. 여기에는 사람과 가치가 살아 숨 쉴 가능성이 넘치고 있다. 광명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은 여기에 사는 우리 스스로와 우리 삶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숫자를 벗어 버리자.

부동산 가치가 부여한 정체성, 구역 이름과 건설사 브랜드를 벗어 버리고 우리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광명이 진정한 정주도시로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To be continued(다음에 계속)'

광명 도시재생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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